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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조선시대 열녀와 장자연씨 죽음의 공통점

by 달그리메 2011. 3. 17.

이웃 일본의 강진으로 덩달아 나라가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그 틈에 고 장자연씨 편지 친필여부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억측이 난무한 가운데 친필이 아니라 조작되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결과를 보면서 어디에선가 가슴을 쓸어내렸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혹시나 이번 기회에 뭔가 조금은 달라지려나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역시나 하면서 실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조선 풍속사 중에서도 열녀와 기생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는데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하다 남편이 죽자 아내도 따라 죽었다는 열녀문의 내용입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열녀비나 열녀문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고고하게 서 있는 열녀비나 열녀문이 사실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의 표상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나요.


유사 이래 세상은 철저하게 남성 중심 사회였습니다. 일부 시대나 종족들 중에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열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남자가 있었고, 여자의 일생은 그런 남자의 주변부에서 남자에 의해 살아지는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속에 숨어있는 내막을 잘 몰랐을 때는 열녀비나 문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고 깊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죽은 남편을 따라 목숨까지 버려야 했고 그 충정을 기리는 마음으로 세워진 것이 열녀비나 문이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 진심으로 고개숙여 숭배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은 할 수가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열녀문이나 비에 담겨있는 뜻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죽어 백골이 된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키며 죄인처럼 살아야 하거나 목숨을 버려야 했던 것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선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처를 두고도 첩을 몇 명씩이나 거느렸던 남자들과는 달리 개가를 하게 되면 자식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의 온갖 불이익을 줌으로써 현실적으로 수절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여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사회가 물리적인 힘으로 막았습니다.  

반대로 가문에 열녀가 나오면 큰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럴듯한 집안에서는 은근히 죽음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열녀라는 말 속에 담긴 진실로 보자면 순장제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비인간적인 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조금은 다르겠지만 기생들의 삶 역시 한스럽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기생은 모두 관기로 노비였습니다. 대대로 세습이 되었던 기생은 남자들의 노리개로 유희의 노예이자 성의 노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열녀를 양산하고, 기생이라는 신분을 만들어 그것을 누렸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다 남자들이었고 그것도 권세꽤나 있는 양반들이었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습니다. 이제 열녀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만큼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이가 딸린 이혼녀가 총각 결혼을 예사롭게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게 흉이 아니라 다 능력이라고 그럽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으로써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말이 생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과연 겉으로 보이는 만큼 세상이 그렇게 여성 중심으로 변했을까요?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성에 관한 문제만큼은 여자는 여전히 약자입니다. 고 장자연씨의 죽음은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성 중심 사회의 치부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연씨 사건을 재수사 할 의사가 없다는 검찰의 발표가 실린 신문기사입니다.


친필이 아니라는 결론을 두고 사람들은 별로 새삼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설령
친필이었다 해도 사람들의 심정이 심드렁한 건 마찬가지 였을 겁니다. 권력이 나서서 스스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든 건 바로 권력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힘있는 사람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믿음을 만들어주기는 커녕 권력을 이용해 온갖 비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조작이든 아니든 그건 어쩌면 의미가 없는 일이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들이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몸을 담보로 뒤를 봐주는 스폰서가 없으면 스스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지요. 

흔히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열심히 살면 된다구요. 오죽했으면 꽃다운 나이에 생 목숨을 버렸겠습니까마는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조선시대 열녀처럼 남성 중심의 일그러진 사회가 만들어낸 강요된 죽음이었다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죽음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살아남아서 용기있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당당하게 고발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들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SBS가 국과수의 결과를 수용하겠다면서 별개로 장자연씨의 사건을 계속 밝히겠다고 합니다. 언론이 나서서 그래주면 더없이 고마운 일입니다만, 얼마나 밝힐 수 있을라나요. 사람들은 또 의심부터 먼저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진심으로 그래주기를 바랄뿐입니다.
 
몇백 년이 흐른 후 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조선시대의 열녀나 지금의 장자연씨 처럼 그런 피해자가 여전히 있을까 아니면 정말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세상이 되어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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