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이 만들어지면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구석 구석 길 만들기 열풍이 일었습니나. 길 만들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입니다. 어떤 이들은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서 참 좋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호젓한 맛도 사라지고 상업화로 인해 잃게되는 것들도 많다고 염려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 부산 갈맷길, 외씨버선길, 지리산 둘레길, 합천 선비길 등등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길을 걸어봤지만  남해 바랫길 그중에서도 가천에서 홍현에 이르는 길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작용을 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걸어보기를 권할 만한 길입니다.

 

가천 홍현 길이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우선 두 길을 이어주는 가천마을과 홍현마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가천마을은 다랭이마을로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마을이긴 하지만 저는 가천마을보다 오히려 홍현마을에서 더 큰 감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친 바다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고 그 안으로 자리잡고 있는 밭에서는 각종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잘 가꾸어진 마을 정원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정원보다 훨씬 운치가 있고 자연스럽습니다.

 

한 길에서 내려다보려다보면 남해에서 유명한 마늘밭 픙경이 한 눈에 담기는데 그 뒤로 방풍림이 있고 그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저 멀리 떠 있는 섬들이 그야말로 구도를 잘 잡아 찍은 사진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덕배기를 걸어 내려가 마을로 들어가면 바다를 따라 길이 나 있습니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는 석방림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서 바다와 마주 앉아 느긋하게 쉬어도 좋습니다. 언제나 사람들도 북적이는 가천마을에 비해 홍현마을은 조용한 갯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홍현마을과 이어져 있는 가천 마을은 언덕배기에 계단처럼 이어져 있는 다락논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다랭이마을은 격세지감을 참 많이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장남이나 장손에게 문전옥답을 주면서 조상을 모시고 집안 대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문전옥답은 부와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자갈밭이나 언덕배기에 땅떼기를 가진 이들은 늘 가난하고 허기가 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지요. 문전옥답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농사 지을 손이 없어서 빈 땅으로 놀리거나 소작을 준다해도 받는 몫이 예전에 비하면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거칠어서 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땅들이 경치좋은 곳에 있기만 그것만으로도 큰 돈이 됩니다. 제대로 대접 못받았던 차남들이나 땅 구실도 제대로 못했던 곳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천 다랭이 마을 땅값이 웬만한 도시에 있는 땅값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하네요. 시절이 변해 탓도 있지만 그만큼 가천 마을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닌가 싶네요.

 

 

멀리 다랭이 마을의 모습이 보입니다.

예전에는 척박하기 그지 없었던 땅들이 이제 귀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다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농사를 지을 땅이 부족한 섬 사람들의 삶은 훨씬 고달팠습니다. 거친 바다를 상대로 먹고 살 길을 찾아야했으니까요. 그래서 섬사람들은 금기시하는 것들도 많았고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는 그들만의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다랭이 마을에 가면 밥무덤이 있습니다. 갯마을에 가면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 많은데 여기서는 풍농을 기원하며 밥무덤을 만들어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넘치도록 많아졌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배불리 먹는 것만큼 중요하고 큰 일이 없습니다.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너도나도 민박을 하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다랭이 마을의 유명한 명물 암수바위입니다.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직접 소를 몰고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조형물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 대신에 마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마을을 구경하다 아주 경겨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북적이는 여행객들 사이로 시금치 밭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보기가 참 좋습니다. 해풍을 맞고 자라는 시금치는 마늘과 더불어 남해의 유명한 특산물이 되었습니다.

 

 

가천 다랭이 마을이 유명해진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움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락논이 이렇게 풍성해지면 훨씬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찾게 될 것이구요.

 

옛날 남해 사람들이 갯가에 물 일을 하러 가던 길을 바랫길이라고 했답니다. 남해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그 길을 지금은 여행객들이 걷고 있습니다. 가천마을과 홍현마을로 이어지는 바랫길은 바닷가와 한 길 사이 적당한 곳에 길이 나 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조금 오르거나 조금 내려가거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1박 2일 빠듯한 블로거팸투어 일정으로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바랫길 정취가 아쉽기만 합니다. 가을 햇살이 까실하게 퍼지는 날, 문득 일상을 털고 나서서 이 길을 한 번쯤 걸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만한 삶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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