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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한나라당과 부산 사람들의 20년 로맨스

by 달그리메 2011. 10. 24.

이번 선거는 서울이고 지역이고 상관없이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서울도 서울이지만 함양 골짜기 군수 선거를 위해서도 거물급 정치인들이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선거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지역민들은 마치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분위기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 때도 시골에서는 거물급 정치인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보궐 선거가 이렇게 판이 커진 데는 표면상으로 보자면 여야의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절박함 삶에 대한 고달픔 등이 뒤섞여 지금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주에는 함양에 이어 부산 동구 보궐 선거에 나선 이해성 후보와의 인터뷰를 위해서 시간이 나는 경블공 회원 몇 분과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후보들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아쉬운지라 바쁜 일정으로 이해성 후보와는 인터뷰를 못하고 대신에 부산진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민주당 김영춘 최고위원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번 선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번 선거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박정희 시절에는 기계공고 붐을 일으키며 많은 공단이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누렸던 곳입니다. 그 이후로 직할시라는 외형상의 규모는 유지했지만 안으로 들여다보면 계속 쇠락의 길을 걸어온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지역이 이번에 보궐 선거를 치르는 동구입니다. 전체 인구 중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17.5%라고 하는데 이는 농촌 지역인 전라남도 18.3%보다는 낮지만 경상북도 15.8%보다는 높습니다. 도심 속의 시골이라고 표현을 해도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지역적인 특징이 있다보니 선거 사무실 분위기도 여느 곳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선거 운동원들의 어르신들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고, 사무실에 머무는 동안 허리가 굽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분들의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선거 사무실에 할머니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국민가수 조용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조용필의 히트곡 중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 제목은 한나라당을 향한 부산 사람들의 지극한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나라당이 부산에다 아성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부산 사람들의 깊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보궐 선거를 치르는 부산 동구는 1988년 노무현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된 곳입니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부산에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민주당 당적으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을 부산 사람들은 더 이상 부산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부산 경남의 연고를 버리고 전라도를 택한 이유를 부산 사람들은 이해하거나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산 사람들의 일편단심 민들레같은 사랑을 한나라당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그런 명언이 있습니다. 여자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온갖 지극정성을 들여놓고 막상 자기 것이 되면 적당하게 방치를 한다는 남자들의 애정 심리를 그렇게 비유를 하더군요.

한나라당한테 있어 부산 사람들은 잡은 물고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고보면 부산 사람들의 한나라당 사랑은 지독한 짝사랑이었습니다. 짝사랑의 특징 중에 하나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한결같이 사랑하다 미워하다 체념하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0년 세월 동안 한나라당은 부산 사람들을 방치했지만 차마 한나라당을 떠나지 못한 것은 부산 사람들이었습니다.


30년 전 잠시 대학을 다녔던 그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부산과 지금의 부산은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부산 국제시장이나 자갈치 시장이나 서면은 세월 속에 그대로 멈춰진 것 같은 모습입니다. 변한 게 있다면 오로지 해운대뿐입니다. 그러나 해운대의 발전은 부산 시민 다수를 위한 발전이 아닙니다. 부자들과 재벌들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부산 사람들은 허기가 집니다.

이러고도 한나라당을 이기지 못하면 부산사람들 고질병을 고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왜 부산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할까요? 부산 사람들과 한나라당의 애정 관계를 두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흔히들 가까운 사이를 두고 "우리가 남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 속에는 부산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나와 한나라당을 일치시키려는 집단 최면 현상 같은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선거 때마다 이 말을 한나라당은 아주 요긴하게 써 먹었습니다.

이런 말도 유행을 했습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표현에서는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무심한 애인을 두고 속이 문드러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최후 발악 같은 앙탈을 부려봅니다. 그러고도 차마 버리지는 못합니다. 매번 투표 때면 한나라당에다 꾸~욱 도장을 눌러놓고는 돌아서서 한 마디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부산 동구가 그렇게 도심 속의 시골처럼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한 번도 한나라당을 놓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지난 선거 때 부산에서 김정길 민주당 최고위원의 선전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산은 흔히 하는 말로 한나라당의 '나와바리'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고 세상에 별 사람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부산 사람들 한나라당 짝사랑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남이가'를 '우리는 남이다'로 바꿔도 좋을 만큼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던 시절도 다 지나갔지요. 변심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부산 사람들의 변심에 박수를 보낼 사람들도 아주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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