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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홍류동 소리길 끝에 이르면 무엇이 있을까

by 달그리메 2011. 10. 9.

이번 합천 블로거 팸투어를 하면서 돌아본 곳에 대한 느낌이 제각각 달랐겠지만 함께 한 사람들이 다들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 바로 홍류동 소리길입니다. 그런만큼 소리길에 대한 소감글이나 사진이 블로그에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소리길을 두고 그동안 이런 훌륭한 곳을 방치한 것은 관계자들의 직무유기라는 표현을 했을만큼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다양한 글 중에서 합천 알리기 블로거 팸투어에 함께 했던 정운현님의 글을 읽으면서 소리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인사의 빼어난 경치와 팔만대장경에 감복을 해 유언에 따라 죽어서 해인사 기슭에 유해가 뿌려졌다는 초대 프랑스 대사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눈에 비치는 풍경이 아름답다고해서 이국 땅에 뼈를 묻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그것만은 전부가 아닌 그 분의 마음을 뒤흔든 무엇인가가 운명적으로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콩달콩 임현철님은 블로그에 올리는 소리길에 대한 글을 두고 소리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심사위원으로 해서 배틀을 해보자는 제안도 했더군요. 개인적으로 그런 경쟁에 약하기 때문에 썩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기발하고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요,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홍류동 소리길은 듣고 싶은 만큼 들을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부르는 길 이름도 만들어지기까지는 공이 무척 많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소리길이라는 이름은 합천 해인사 스님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요. 길을 걷다보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등 자연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정운현님의 글에서 알게 되었지만 소리는 불가에서는 '극락' '천당'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름 하나에도 우주만물의 원리가 들어 있다는 작명가들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는 이 길을 걷기 전에 해인사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있는 좀 특이한 불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상이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쪽은 검은 색이고 다른 한 쪽은 흔히 보는 황금색입니다. 무심하게 보면 그만한 뜻이 담겨져 있는 조각 작품이려니 싶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각가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의미 심장한 불상의 모습입니다.

그날 일행들과는 떨어져서 가을을 재촉하는 실비를 맞으며 불상 앞에서 꽤 긴 시간 동안을 머물렀습니다. 반 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불상을 요모조모 살펴보았습니다. 소견이 짧은 지라 그 안에 숨은 깊은 뜻은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망구 제 생각에 겨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 행복과 불행,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등등 세상의 모든 이치는 항상 좋음과 나쁨으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좋음이나 나쁨은 오로지 한 가지로만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짝을 이루는 까닭은 본질을 알게 되는 과정이 스스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행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게 되고, 이별을 통해서 만남의 의미를 알게 되고,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 쪽으로 나뉘어진 두 가지 색깔의 불상은 제게 그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눈물 같은 빗물입니다.

이 평범하고도 비범한 이치를 몸으로 마음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는 사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다고 하지만 다만 이론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고, 평생 그것에 매여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도 아마 일생을 두고 이 화두와 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싸우고도 완전하게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 여전히 있었을 것 같습니다.

빗물이 눈물처럼 말라붙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반 쪽의 황금색 불상에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제 눈에는 눈물 같아 보였습니다. 얼굴을 흥건히 적시며 뚝뚝 떨어지는 눈물...

다른 한 쪽의 까만 불상에도 흘러내린 빗물이 하얗게 말라 있었습니디다. 온 가슴을 적시도록 울어도 그 울음이 새하얗게 바래도 삶은 여전히 해답도 없이 막막합니다. 그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있자니 정체 모를 슬픔 같은 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쏫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불상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홍류동 소리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에 담기는 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물소리에 취하고 바람소리에 취합니다. 눈에 담기는 즐거움이 순간이고 그래서 덧없고 부질없다 해도 우리는 그런 즐거움에 마음이 또 금새 흥그러워집니다.

홍류동 계곡의 물길은 거침이 없어 보였습니다.

악기가 있습니다. 악기들은 대부분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해도 속을 비워야 합니다. 무엇이든 넘치도록 집어넣어 놓으면 제대로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제대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공명(共鳴)을 하려면 모두 다 그만큼 비워 놓아야 합니다.

홍류동 소리길이 오로지 물소리 바람소리를 담는 길이 아니라 가득 채워진 것을 조금씩 걷어내는 길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내는 자신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그런 길이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감상은 순전히 해인사 들머리에 앉아있던 두 조각 불상의 볼을 타고 흐르던 빗물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스님은 길을 걸으며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요?

글은 이렇게 썼지만 원래 말이나 글이 생각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는 완전히 '나이롱'입니다. 이런저런 욕심으로 가득채워져 있고 그래서 제대로 들을 줄도 모릅니다. 다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글 속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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