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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이름이 운명을 바꾼다고 하더라구요

by 달그리메 2010. 9. 3.


다음에서 1년 넘게 블로그를 하다 티스토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블로그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이 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름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규정짓는 여럿 중의 중요한 하나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개명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싫어서이거나 이름으로 인해 놀림을 당한다거나 그런 경우들도 있지만, 그런 정도를 넘어서서 운명을 바꾸고 싶어서 이름을 고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름 이야기를 끄집어놓고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외할머니의 이름이 뭐냐고 언젠가 딸이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은 외할머니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그러더군요. '윤지은'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 이름이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 있냐고요. 할머니 이름이라고 하면 좀 시골스러울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나봅니다.

이름에도 일종의 유행이 있습니다. 요즘은 흔한 이름 중에 지혜, 지은, 혜지, 혜원, 이런 '지'~나 '혜'~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이름만으로 보면 좋은 뜻과 더불어 고운 이미지이긴 하지만 워낙 흔하다보니 별로 좋은 이름 축에 들지 못하지요.

제가 학교를 다닐 그 무렵에는 주로 '정'~ '숙'~이런 글자가 이름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한 반에 정숙이 2~3명이 있었고 정희, 남숙이, 미숙이 하는 이름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지금은 어디 그런 이름을 짓기나 합니까만. 제 기억에는 복자, 춘자도 있었습니다. 복자라는 얼굴이 예쁜 친구는 이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보희라는 가명을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 흔하고 흔해 빠진 이름이 현주입니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 이름에도 현주는 제법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당시만해도 제 이름은 아주 예쁜 이름 대접을 받았습니다. 현주라는 이름에 '나'라는 성이 붙어져서 공주 취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름만요~^^ 그때 현주와 더불어 예쁜 이름 대열에 들어갔던 게 진희, 혜경이 정도가 있었습니다.

다시 친정 엄마 이름 '윤지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습니다. 윤지은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지어준 오리지날이 아니라 가리지날입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개명 신청을 해서 바꾼 이름도 아닙니다. 그 이름 속에는 나름 사연이 있습니다.

친정 엄마의 삶은 참 고달팠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가 뭐 할 정도로 그랬습니다. 우연히 찾아간 점쟁이 말이 이름이 나빠서 고생을 하니 이름을 바꾸면 팔자가 펴일거라고 하더랍니다. 엄마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거지요. '윤지은'이라는 이름은 그자리에서 돈을 주고 덥석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팔자가 펴이기만 한다면 무슨 짓을 못할까 싶었던 엄마의 그 마음을 백번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에야 쉽게 개명을 할 수가 있지만 예전에는 이름을 바꾸는 일이 참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먹고 살기도 정신이 없는데 그런 복잡한 수순을 밟아 가며 개명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겠지요. 그래서 방편으로 하게 된 것이 주위에 널리 퍼뜨려서 부르게 하는 방법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조차 여의치 않았던 게 결혼한 아줌마 이름을 누가 그렇게 부르기나 했습니까?
누구 누구 엄마 아니면 무슨 무슨 댁 이렇게 불리어지는 거지요. 많이 불러주어야 팔자가 펴인다는 점쟁이의 말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새 이름 '윤지은'은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새이름으로 인한 약발도 적어졌겠지요.

고육지책으로 도장을 파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조차 법적인 효력이 필요한 곳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지요.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팔자는 지금까지도 오종종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친정 엄마의 이름은 윤지은이 아니라 윤옥순입니다. 딸이 물었을 때 윤옥순이라고 하지 않고 윤지은이라고 했던 건 아마도 엄마의 삶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애정이 담긴 대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로그 이름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다음에서 사용했던 '하슬린'이라는 블로그 이름은 왠지 교과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어떤 한 곳으로 가두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도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지고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 마음 새 뜻으로 새로운 곳에다 둥지를 틀었습니다.

가볍고 편한 이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볍고 쉬운 이름짓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습니다.
토끼와 잠수함이라는 이름을 권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뜬구름이라는 이름도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물위에 뜬구름~ 토끼와 뜬구름~ 뜬구름 잡는 소리~ 이리저리 끼워맞추다보니 점점 헤갈렸습니다. 그럭 저럭~ 이런저런 이야기~ 온갖 이름들이 머리 속에서 헤엄쳐다녔습니다. 그러다 정해진 이름이 '작은나무 큰그늘'입니다.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힘을 들여서 뭐라뭐라 떠들어대고 싶은 생각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조근조근하고 낮은 목소리가 편하고 좋은 거지요. 그만큼 열정도 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그에 걸맞는 느낌이 나는 이름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작은나무 큰그늘~ 나무가 작으면 그늘도 조그맣기 마련이지만 햇살을 가리거나, 앉아쉬거나,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내다보거나, 들여다보거나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이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 잠시나마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힘들게 이사한 보람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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