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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아프리카의 눈물' 극장판이 아쉬웠던 이유

by 달그리메 2011. 4. 5.
텔레비전을 두고 흔히들 바보상자라고 합니다. 근데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알뜰시장에서 헐값에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것처럼 실한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MBC 한학수 PD가 만든 다큐멘터리'아프리카의 눈물'이 그런 프로그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하면 가난, 굶주림, 사막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유명 배우들이 나와서 하루에 얼마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광고가 그런 인상을 강하게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끼니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어둠이 찾아오면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일상은 사람이 사는 어느 곳인들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태어나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나 모습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눈물'을 통해서 본 아프리카는 그동안 상상하거나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음식은 늘 부족하고 삶터는 험했으며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저 본능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을 그렇게 척박하게 만든 가장 큰 중심에는 물이 있습니다. 자연에 의지해 사는 아프리카에서 물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물은 그곳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 숨쉬는 어느 곳이든 목숨입니다. 공기와 마찬가지로, 너무 귀해서 절실하거나 너무 흔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거나 그럴 따름입니다.

 

목이 말라 심장이 타 들어가 죽은 코끼리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눈물'의 주제는 환경파괴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생기게 되는 물 부족으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되는 모습과 사회 질서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아주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에 이어 '아프리카의 눈물'이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텔레비전에서 느꼈던 감동을 색다르게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극장판을 보기로 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마산 창원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고 그나마 가깝다는 곳이 김해 CGV였습니다. 작품성 있는 괜찮다 싶은 영화나 독립영화는 지역에서는 어지간하면 구경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동네 극장들을 자본으로 모조리 잡아먹고 지역 사람들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가면서도 정작 지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문화적인 배려도 안 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행태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차를 몇 번씩 갈아타고 극장판 '아프리카의 눈물'을 관람하기 위해 김해로 갔습니다.

 

'아발레'를 한 이 여인의 모습이 정녕 아름다운지요?


극장판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충실했던 텔레비전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굶주림과 고통 속에도 웃음도 있고 사랑도 있더라며 영화적인 재미에 좀 더 접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정서와 문화의 차이라는 게 있습니다. 개를 자식처럼 여기는 유럽인들과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차이처럼 말입니다. 미에 대한 기준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아발레를 한 여자들의 축 늘어져 너덜거리는 입술 사이로 허옇게 드러나는 이와 잇몸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입술 문신을 견디는 어린 소녀의 모습은 참혹하고 섬뜩해서 절로 고개가 돌려졌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원색의 옷색깔 만큼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에 대한 욕망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원초적이면서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귀에 구멍을 뚫는 게 무서워 귀걸이 할 생각도 못하는 제가 보기에는 아름다워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거의 목숨을 거는 수준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더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속에는 그들만의 자존심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발레를 한 여자들의 입술이 점점 더 늘어날수록 부족 여자들의 강한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놈의 죽일 자존심은 입술 문신을 할 때도 나오더라구요. 침봉으로 내리치는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아프다고 소리를 내면 자존심이 없는 여자가 된다고 하니 두 번만 자존심 지켰다가는 사람 잡겠다 싶었습니다. 자존심이 뭐라고, 제가 보기에는 그냥 자존심 없는 여자로 사는 게 훨씬 더 편하겠더만요.^^

좀 더 아름다워지려고 턱을 깎고, 살을 덜어내고, 코를 세우고, 주사를 맞아대는 이곳 사람들 모습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면 뭐라 생각할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를 보고 다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참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남자는 좀 더 힘이 쎄지고 여자는 좀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이성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그런 부질없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을테니까요.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런 욕망으로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도 생명이 지고 대신에 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녀의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름 재미있게 봤지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이 교훈적이거나 시사적이지 않아도 된다면 더 재미있게 접근했으면 좋았을 걸 싶었습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아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아주 재미있게 봤던 장면이 다섯 명의 부인을 가진 남자 이야기였습니다. 죽은 아우의 아내를 거두어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배은망덕이 그곳에서는 백골난망이 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내를 다섯이나 거느릴 수 있다면 우리나라 남자들 좋아할까요 괴로워할까요?^^

물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가축이 점점 사라지고 그래서 다섯 아내를 거느리기가 어려워져서 아우의 아내를 내치게 되는데, 물로 인한 불행을 상징하면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영화에서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인간과 코끼리의 전쟁 장면이 잠시 나왔는데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아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에서 작고 낡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즐거운 눈요기가 많았음에도 뭔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거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아프리카의 눈물'이 던져준 메세지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했습니다.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인간 삶의 파괴, 우리가 지금도 무심히 흘려보내는 물에 담겨 있는 어마머마한 힘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 훌륭한 다큐멘타리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물은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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