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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장승포~부산 뱃길의 추억 그리고 거가대교

by 달그리메 2010. 12. 21.

거가대교가 개통을 하고 첫 주말을 맞아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저는 주말을 피해 저번주 평일에 다녀왔는데 그날도 사람과 차량의 물결이 줄을 이었지만 그래도 다닐만 했습니다. 
장승포에서 나고 자라면서 부산 뱃길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라도 빨리 새로 생긴 거가대교를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12월 말까지 1만원이 넘는 통행료가 공짜라니~웬 떡인가 싶은 거지요. 아마도 그 공짜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길이 막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래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장승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등대를 빠져나가 부산으로 갔습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입니다. 하지만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거제도 사람들을 종종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순박한 섬사람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사천 골짜기로 시집을 갔더니 동네 어르신들이 새색시 구경한다고 우르르 몰려와 저에게 한마디씩을 던지는데 섬처녀가 뭍으로 시집을 왔다며 출세했다고 그랬습니다.

장승포가 섬이긴 해도 부산물을 받아들여 어지간한 중소도시 정도의 생활 수준은 된다는 사실을 시골 사람들이 알 까닭이 없었겠지요. 그처럼 장승포 사람들의 생활권은 마산보다는 뱃길이 가까웠던 부산에 속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부산 땅을 밟았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 우리집은 시장통에서 큰 연쇄점을 했는데 시장 사람들을 상대로 부산과 장승포를 오가며 물건을 실어나르는 해성호가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부산이 어떤 곳인지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큰 결심을 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일찍 사람들이 배에 오르기 전에 미리 해성호 짐칸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가 정말 용감무쌍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자들이 배타는 것을 무척 금기시했습니다. 부정을 탄다고 그랬지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어부들은 그런 생각들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쬐그만한 계집애가 특별히 볼일도 없이 부산 구경을 하기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날의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부산 땅을 한번 밟아보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짐칸에서 올려다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뒤집어졌다를 수십번 반복하고 나서야 저를 발견한 어른들 손에 질질 끌려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사장 딸래미 다 죽게 생겼다" 사람들 소리에 아버지가 저를 뒤늦게 알아보고는 '이노무 가시나~'가 하면서 방방방 뛰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요. 이미 항구를 떠난 배였습니다.

부산이 왜 그렇게 멀던지요. 수평선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쾌속선이 없던 시절 파도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달리던 완행 여객선으로 서너 시간이 걸리던 뱃길이었습니다. 속에 있는 똥물까지 다 토하고 나서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근처 가게에 가서 사이다를 사와서 먹였는데 들어마신 사이다를 분수처럼 뿜어댔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고 보니 5학년 때 부산 땅을 처음 밟았다고 했는데 뻥입니다. 배 안에 누워서 하늘만 실컷 쳐다보다가 멀미약을 먹고 다시 돌아왔으니까 그 때 부산 하늘을 처음 봤다는 게 맞습니다~ 푸하하^^

부산 뱃길은 늘 날씨에 매였습니다. 바람이 불면 배가 떠지 못했습니다. 마산을 경유해서 부산까지 차를 타고 가려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지금은 서울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지요.

그후로 두리둥실호와 바람따라호라는 쾌속선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1시간대의 쾌속선을 타고 부산을 오고 가면서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이 좋아졌다구요. 그런데 이제 부산과 거제를 이어주는 다리가 생겼습니다. 그런 저런 부산 뱃길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면 참 꿈같은 이야기 입니다.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쾌속선의 경영이 어려워질 거라는 말도 있고 없어질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두리둥실호와 바람따라호도 머지않아 추억속으로 사라져갈 운명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변합니다.

 

 

                                     가덕도에 있는 거가대교 진입로의 모습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내서에서 거제도까지는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습니다. 현동 길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1시간 정도가 단축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거가대교를 타고 거제도를 가면 돈도 시간도 훨씬 더 듭니다. 내서에서 마창대교를 건너 가덕도까지 가는 시간이 밀리지 않는다고 해도 40분 정도는 걸립니다. 

거기에다 마창대교 통행료에다 1만원이 넘는 거가대교 통행료를 합치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별로 득이 없습니다. 그래도 돈과 시간에 매이지 않고 가끔은 거가대교로 해서 거제도에 가는 호사를 누리고 싶습니다. 지난 추억을 더듬으면서 말입니다.

 
 

                         거가대교 휴게소 모습입니다. 주변 풍경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바다 물길을 막아 길을 낸  침매터널 모습입니다.


바다 물길을 가로막아 만든 침매터널을 지날 때 해저깊이 30미터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달리고 있는 곳이 물속인지 땅속인지 육지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주선이 달나라도 가는 시대이긴 하지만 인간의 무궁무진한 능력에 새삼 경외감이 느껴졌습니다. 통영과 거제를 이어주는 거제대교의 밋밋함만을 떠올리며 상상했던 그런 거가대교가 아니었습니다.

토목공사로 잔뼈가 굵은 이명박이 이번 공사를 맡았던 업체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산업훈장을 수여할만큼 거가대교는 상상 이상의 다리였습니다. 당분간은 이 이상의 다리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다리인지 설명으로는 부족하니 직접가서 보면 압니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세상과 세상을 통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길을 따라 다녔습니다. 산이 있으면 돌아갔고 강이 있으면 둘러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가고 싶은 방향대로 길을 만듭니다.

산이 가로 막혀 있으면 터널을 뚫고 강이 있으면 다리를 놓습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곳곳에 다리발을 세워 구불구불한 길을 다림질하듯이 쭉쭉 펴 놓습니다. 이제는 바다 물길을 가로막아 길을 만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길은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길을 통해 얻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길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가 되면서 길위에서 만들어내는 따뜻한 사람들 이야기도 함께 사라져갑니다. 거가대교는 사람이 걸어다닐 수 없는 길입니다. 사람이 걸을 수 없는 길을 달리면서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향수와 사라져가는 것들에 아쉬움을 함께 느꼈습니다.

 
                      
 

지금은 한창 대구철입니다. 거가대교를 타고 대구축제가 열리고 있는 외포항에 가면 
싱싱한 대구를 싸게 살 수 있습니다.


거가대교를 빠져나와 장목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김영삼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대구로 유명한 외포항이 있는데 때마침 대구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거가대교 덕분인지 김영삼 생가에는 평소와는 달리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구 축제장도 붐볐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고현 중동시장에서 유명한 가좌도 횟집도 거가대교 효과를 단단히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빨대 효과가 어떻고 하면서 거가대교로 인해 부산과 거제도 중에 어느 쪽이 더 이로울지 손익 계산을 따지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고향 거제도가 거가대교 덕분에 제주도처럼 유명한 관광섬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 축제장에서 아귀 두마리를 사서 차에 싣고 고현으로 향했습니다. 고현에 가서 느긋하게 회를 먹고 다시 거가대교로 돌아나와도 한겨울 짧은 해가 아직 떨어지지 않고 서산마루에 걸려 있었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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