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극장에 갔더니 상영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영화는 연평해전이었습니다. 합성동 롯데 시네마에서는 월요일, 화요일은 소수의견을 아예 상영 자체를 하지 않더라구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이 된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의 개봉관 점유율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까닭이 무엇인지 좀 궁금했습니다.

 

소수의견는 용산 사건을 다룬 소설을 영화화 했지만 그렇다고 용산 사건을 다루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상황 설정이 비슷하다는 정도입니다. 하루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영세 상인들의 삶 터를 아무런 대책없이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열 여섯 소년과 스무살의 의경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소년은 의경에게 죽고 의경은 소년의 아버지에 의해 죽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경찰은 소년을 죽인 것은 의경이 아니라 철거를 하고 있던 용역 직원이었다며 경찰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고 국민! 피고 대한민국! 이라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국민 재판이 열리게 되고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한 쪽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영세 상인이고 한 쪽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자 엘리트라고 하는 검찰과 경찰간부들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이 구도는 게임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게임을 한들 결과는 뻔할 것이구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입니다. 일방적인 게임으로 끝내지 않고 팽팽한 긴장 구도로 몰고 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서는 힘의 균형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소수의 편에서 그들을 변호하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하는 두 명의 변호사는 유해진과 윤계상입니다,

 

두 변호사 이력도 재밌게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를 386 따라지라고 자처하는 학창시절 한 때는 어느 데모장에서 정권 타도를 외치며 화염병도 던졌을, 그렇지만 지금은 이혼 전문변호사로 그럭저럭 밥 벌어먹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지방 국립대를 나온 2년차 국선 변호사. 

 

이혼 전문'이나 '국선' 같은 말이 붙으면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변호사이긴 하지만 급이 달라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윤계상은 그런 대사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다. 이 자조 섞힌 넋두리를 하는 대목에서는 지방과 서울이 급수가 다르다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방에서 인 서울을 하면 급이 달라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sky 대에 입성을 한 대학생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sky 대에 다닌다고 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아줄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 시선이고 내부 사정은 다르다고 그럽니다. 끼리끼리 논다고들 하지요.

 

외고 출신에  대치동 학원 출신, 거기다 강남에 빌딩있고  재산 많은, 혹은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닌 부모를 가진 그네들은 절대로 시골에서 아둥 바둥 공부해서 올라온 아이들을 쳐주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겉으로는 어울리지만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다고 할까요! 출신 성분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 눈에는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다들 입신 출세한 사람들로 보입니다만, 그런데 그 속에도 급수가 존재한다는 걸 소수의견 영화 속에서 설정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가진 자는 힘이 있고 그런 대상과 싸우는 반대편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영화속에서나 현실에서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영화는 한 쪽에서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치열한 머리 싸움에 들어갑니다. '니가 대신 내 죄를 뒤집어 쓰면 내가 가진 권력으로 니 죄를 사하여주겠노라'는 경찰의 꼬드김에 한 사람이 넘어갑니다. 

 

이 사람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역활을 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법은 팩트보다는 법을 휘두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유명한 명언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겠지요.

 

영화에 나오는 높은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게 늘 이 따위입니다. 권력으로 힘 없는 사람 누르기, 힘 자랑하면서 공갈 협박하기, 사지에 몰린 사람 사탕으로 꼬셔서 이용해먹기, 내가 언제 그랬냐고 잡아떼기, 증거를 대라고 큰소리치기, 그것도 안되면 두들겨패기...그런데 과연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일까요?

 

옛날 같았으면 아마도 이런 장면에서 어디서 뻗쳐오르는건지도 모를 분노감으로 몸을 한 번 파르르 떨었을텐테 이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들에 어느 정도 정서적인 적응(?)이 돼서 그런지 다 그런거지 뭐 하는 자조감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힘을 풀고 편하게 봐지더라구요. 

 

분노를 삼키게하는 체념 뒤에 가장 마음에 밟히는 것은 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두 어린 영혼들이었습니다. 삶 터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무참히 짓밟는 장면을 그냥 바라볼 수 없었던 어린 아들, 스무살에 입대해서 데모 진압 현장에 투입 돼 그렇게 죽어간 의경,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저는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토를 달고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평론가들이 분석을 하지만 그 안에 억만금의 뜻이 담겨있다하더라도 너무 재미가 없으면 영화로써 힘이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양 편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습니다. 뻔하다. 진부하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참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서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회색분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재미있게 봤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지라도 진실을 향해 자신을 내 던질 줄 아는 영화 속 루저 변호사들의 따뜻한 인간애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이 좋았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국가가 우리를 속일지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이 이 세상 어디엔가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게 뻔한 설정이었다하더라도...

 

당신은 다수의견의 힘을 빌어 소수의견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대한민국이 그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런 대한민국을 여전히 꿈꾸시나요? 영화 제목은 우리에게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 답은 마지막 판결에서 나옵니다.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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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그리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