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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삼풍백화점, 세월호, 메르스 그리고 나

by 달그리메 2015. 6. 24.

며칠 전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삼풍백화점 사고 20주년을 맞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주제로 사건을 재조명하는 방송을 했는데 참 관심있게 봤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방송을 시청했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때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새삼 진저리를 쳤을 겁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대참사로 기록될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오래된 빈민촌 낡은 건물도 아니고 도심 한 가운데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던 백화점 건물이 그것도 세운지 4년 밖에 안 된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시간은 단 8초였다고 합니다.

 

부실 공사와 불법 증축으로 얼룩졌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번듯한 모습 이면에 숨겨진 부와 권력에 허덕거리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와 권력에 매달리는 인간의 말로가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당시 사고도 사고지만 그 보다 더 사람들을 공분케 했던 것은 삼풍백화점 사장의 행태였습니다. "사고가 나서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갔지만 자기들도 재산적인 손실이 크다" 그런 말을 쏟아 놓고도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우리나라가 확실히 법치국가가 맞는 모양입니다. 법이 아니라면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았을 것 같은 데 말입니다.

 

사망자는 500명을 넘었고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부상자들까지 헤아린다면 실로 엄청난 사고였습니다. 전쟁터를 방불케할만큼 급박하고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뀌었을 20년의 세월은 그들을 사고 이전의 삶 속으로 온전하게 되돌려 놓을 수 있을 만큼의 충뷴한 시간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고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사고로 망가진 몸의 고통과 그로 인한 생활고 만은 아니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 희생자'라는 틀에 가두어서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은 그들을 늘 한 구석에서 서성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다루고자 했던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만 20년 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되짚어보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고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에게 감추어진 이중성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 지를 함께 짚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세월호 사고로 이어집니다. 300명이 넘는 꽃다운 청춘들이 타고 있는 배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화면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면서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국가 권력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국민들은 넋을 놓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못다핀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 줄을 지어 꽃을 바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함께 정부를 비판하고 진실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호의적인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유가족에 대한 안스러움이 언제부터인가 비난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싸늘해지기 시작한 것은 8억이니 10억이니 하는 보상금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터였을 겁니다. 자식의 죽음을 두고 거래를 한다고들 했습니다.

 

여행을 가다 사고를 당한 것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요란을 떠느냐는 사람들도 점점 늘었습니다. 졸지에 유가족들은 나쁜 사람들이 되어갔습니다. 점점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유족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정부와 싸워야 했고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싸늘한 태도와 시선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싸움은 진행 중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메르스로 이어집니다. 메르스는 세월호 보다 훨씬 더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방해했습니다. 누구도 예상 못한 느닷없는 상황에 얼떨떨해 하던 사람들은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원인 제공자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신상이 털리면서 감염자와 가족들은 피해자이면서 대중을 향한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피할 수 있거나 없는 사고들을 마주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고를 방지하고 대응해야하는 책임자들의 무능력도 그렇지만 피해자들을 보는 대중들의 이중적이고 가학적인 사고나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삼풍백화점 사고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프로그램은 끝을 맺습니다.

 

인간이 애써 마음을 먹지 않아도 가장 수월하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남의 불행 앞에서 동정심을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타인의 행복 앞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요. 만약 세월호 유가족에게 주어지는 보상금의 액수가 몇 백 만원이었거나 몇 천 만원이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메르스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질병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나에게 피해가 되는 일에도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단지 남들이 잘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나하고는 다른 특별한 상황에 놓여졌다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을 가지거나 이질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거지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렇다면 내 모습은 과연 어떤가?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인간들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와 모순은 일정 부분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어쩌면 근원적인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하지만 슬픈 생각을 프로그램을 보면서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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