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테크윈 사람들과 블로거 간담회를 하고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문득 문득 그들이 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번쯤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삼성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합니다. 좀 과격한 사람들은 돈을 미끼로 사람들의 고혈을 빼 먹는 악덕 기업이라며 맹 비난을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브랜드라고 믿는 거지요. 저는 줏대가 없기는 하지만 그 중간 정도 쯤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삼성테크윈은 외 직원을 다 포함하면 6,700명 정도 규모의 상당히 큰 공장입니다. 2사업장, 3사업장이 있는데 블로거 간담회를 했던 사람들은 군용 전투기, 헬기 등 모든 항공기 안에 들어가는 엔진을 정비하고 조립하는 창원 2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성테크윈이 한화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처음 뉴스를 통해 들었을 때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600만 시대에 삼성이냐 한화냐 하는 것은 배부른 투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저 뿐만 아니라 직접 관련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삼성테크윈 사람들과 블로거 간담회를 한다고 했을 때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삼성맨으로 편하게 누리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노조를 결성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을 하게 되리라고는 그들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삼성테크윈이 한화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같은 식구이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졸지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진-김주완

 

삼성테크윈을 한화로 매각하는 속내는 이재용과 그 일가 밖에 모를 것입니다. 적자를 내는 공장도 아니었고 오히려 근래 몇 년은 흑자가 늘었다고 하니 적어도 외면 상으로는 매각의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짐작컨대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미리 자식들에게 재산 분배를 해서 상속세를 최소화하려는 꼼수라는 것이지요.

 

사실 삼성의 그런 결정을 두고 노조를 결성해서 투쟁을 한다고 한들 상황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은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본인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조의 규모와 투쟁의 강도와 상관없이 이건희 일가에게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테니까요.

 

노조원들은 이번 매각 사실을 언론들이 철저하게 왜곡 축소 보도하고 있다고 하면서 무척 서운해 했습니다. 언론조차 삼성에게 자유롭지 못한 처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만. 더 재미있는 것은 예전 같았으면 삼성에 침묵하는 언론에 대해 지금처럼 서운해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 말입니다.

 

그동안의 경과를 쭉 풀어놓는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는 궁금증이 대충 정리가 되었습니다. "블로그가 기존 언론이나 기자들에 비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고 한데 어떻게 블로거 간담회를 할 생각을 했느냐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알리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 노조를 결성해 투쟁을 하는 자신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위로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행동이라고 오해를 하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겠냐마는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한화로 넘어갔을 때 정년을 보장받고 싶은 게 가장 우선이다. 돈을 많이 받게되면 준 사람들은 그만큼 자유로워지겠지만 반대로 받은 사람들은 받은 만큼 자신의 주장에 대한 명분도 적어지고 입지가 좁아지는데 우선 달다고 돈을 많이 원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럽니다.

 

예전에 삼성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산재 인정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삼성은 달콤한 사탕같은 회사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탕은 언제나 달콤합니다. 그런데 그 달콤함을 누린 결과는 개인의 몫입니다. 당뇨병에 걸리든, 치아가 상하든, 비만으로 인해 질병을 앓든 말입니다. 노조는 달콤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데 삼성은 그 창구를 아예 만들지 않고 사람들에게 달콤함으로 유혹을 하는데 그칩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탕을 받는 것으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암묵적인 합의를 하는 거지요.

 

" 본인들은 지금의 상황이 말할 수 없이 괴롭고 힘들겠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심정을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청년 실업이며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조차 호강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삼성 안에서 살다가 삼성 밖으로 나오니 뭐가 달라졌는가? " 그것이 제 두번째 질문이었습니다.

 

사진- 김주완

 

그들의 답변입니다. "솔직히 삼성 안에서 많이 누렸다. 삼성맨이라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가졌던 자부심과 누렸던 안락함이 있었다. 그것을 인정한다. 삼성 안에서 본 세상은 절실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도 맞다. 그런데 삼성 밖으로 나와서 삼성을 보니 이제서야 삼성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더라. 세상이 제대로 보이더라.

 

같이 살던 부부가 이혼을 해도 오랜 시간 싸우고 찌지고 볶으면서 합의를 한다 그런데 어찌 한 식구라고 믿고 살았던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면서 사전에 단 한 마디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을 수가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다.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겠지만 그것이 적어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가 삼성의 부속품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간으로 대접받았다는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 삼성 밖으로 나오니 정치도 보이고, 비정규직도 보이더라. 우리가 얼마나 편한 조건에서 일을 했는지 알겠더라. 지금 우리가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하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도 아니고, 더 많은 돈을 원해서도 아니다. 이제 비로소 내가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내가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이런 노력이 많은 삼성맨들에게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온 몸으로 저항하는 밀양 어르신들을 보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처절한 행보를 보면서, 그리고 삼성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게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 대해 무감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마주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세상에 눈을 떠 가는지를요.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 속에는 무수한 부조리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일들과 맞닥뜨리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다만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뭔가를 깨닫고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별 기대가 없었지만 의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움직인만큼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한만큼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삼성테크윈 노조원 여러분들의 용기있는 행보에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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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그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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