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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영화로 만나다

by 달그리메 2014. 6. 2.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저는 지금도 주저없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그 중에 하나로 꼽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의 삶에 내재된 운명같은 슬픔으로 인해 아렸던 마음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그런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한 편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 반감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마음 한구석에는 있었습니다.

 

영화는 어른이 된 제제가 소설가가 되어 자신이 쓴 책을 들고 고향 마을을 찾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고향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에서 펼져집니다. 훌쩍 자란 밍기뉴 앞에 서서 제제는 과거의 기억속으로 들어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했던 제제는 깡 마른 체격에 약간 까무짭짭한 모습이었는데 영화 속 제제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피부 빛깔이 하얀 소년이었습니다. 록키의 주인공인 실베스타스텔론을 꼭 빼닮은 모습이 참 귀엽기도 했습니다.

 

 

제제에게 유년의 기억은 아픔입니다. 실직한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종일 어두웠습니다. 그 곳에는 가난과 폭력만이 가득할뿐 희망이 없습니다. 가난과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제제는 언제나 멀리 멀리 떠나는 꿈을 꿉니다. 떄로는 바다에 이를 수 있는 물이 되고 싶어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제제가 어떻게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지가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집안 식구들에게 두들겨 맞은 제제에게 위로가 되는 건 이웃 사람들입니다. 친척 아저씨, 이웃 할머니, 학교 선생님, 악보를 파는 음악가, 다 제제의 친구들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고통도 모두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릅니다. 가족은 마치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운명의 공동체같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다 경쟁 상대이거나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제제는 가족들로부터 폭력을 당하면서도 바깥의 어른들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가족은 때로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두꺼운 벽이 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좀 더 유연한 인간 관계가 왜 필요한지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제제의 유년시절은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암울한 일상을 보내던 제제 앞에 뽀르투까가 나타납니다. 뽀르투까는 제제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새로운 세상입니다. 백마탄 기사처럼 짠하고 나타난 뽀르투까 아저씨는 상처받은 제제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낙원이 되어줍니다.

 

나이 차이가 쉰 살도 훨씬 더 나 보이는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친구가 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이토록 아름답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살만한 것인가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판에 박은 듯 합니다. 비슷한 동년배 끼리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제에게는 또 하나의 친구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밍기뉴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도 마음 불편해 하지 않아도 좋을 친구 하나쯤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뽀르투까 아저씨와 밍기뉴는 제제의 암울한 유년 시절을 빛나게 만들어줍니다. 

 

 

세상에서 인간을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서슴없이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목숨과도 같은 사람을 잃게되는 상실감,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제제는 낙원과도 같았던 뽀르투까 아저씨와 이별을 하게 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자동차의 몸체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철길 위에 나딩굽니다. 제제의 낙원도 그렇게 사라집니다.

 

여덟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이별이었습니다. 아저씨와의 이별을 통해 제제는 훌쩍 자라게 됩니다. 어쩌면 아저씨는 제제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주고 떠난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랬었구나 삶은 그렇게 깨달아집니다.

 

제제는 이제 더 이상 밍기뉴 위에 올라타서 말을 달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아무리 소중한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씩 모아두었던 소중한 물건들을 다 버리는 장면에서 제제가 얻은 작지만 커다란 깨달음이 느껴집니다.

 

다 버리고 딱 한가지 버리지 않은 것이 만년필입니다. 밍기뉴 그늘에 앉아 제제는 아저씨가 주고 간 만년필로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제제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뽀루투까 아저씨와 밍기뉴는 제제의 삶의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그들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그들과의 슬픈 이별이 없었다면 제제는 어쩌면 일탈을 꿈꾸는 삐뚜러진 인간으로 성장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경험은 제제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된 것입니다. 그렇듯 세상에는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없습니다.

 

영화는 책 속에 담긴 감동과 메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요란한 기교나 장치가 없이도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리 귀한 보석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빛이 나겠지만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 책을 읽으신 분이나 읽지 않은 분이나 상관없이 그 감동을 한 번 느껴보시기를 권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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