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여행하면 국내보다는 외국 여행이 훨씬 더 그럴듯하다는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너도나도 외국으로 떠납니다. 국내는 갈 곳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외국의 유명 관광지를 가보면 복잡하거나 제대로 즐길 게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대로 즐길줄만 안다면 우리나라도 곳곳에 좋은 곳이 많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이 밀양이나 창녕을 돌아보면서 감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느낌이 외국의 이름난 곳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고 그러더군요.

 

창녕은 특별히 관광지로 이름이 난 곳은 아닙니다. 우포늪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우포늪 말고는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잠시 다녀가는 곳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은 경주라고 할만큼 문화유적들이 많은 곳이 바로 창녕입니다. 한 번쯤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도 좋을 장소 몇 곳을 소개해드립니다.  

 

 

이곳은 망우정입니다. 망우정'라는 뜻을 풀이하면 근심을 잊는 곳 정도가 될까요. 망우정은 망우당 곽재우가 쓸쓸하게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그 많았던 집안 재산을 의병활동에 다 탕진하고 아~탕진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한데 백성들 입장에서는 눈물겨운 일이지만 사돈의 팔촌 재산까지 다 말아먹었으니 곽재우 집안 사람들 입장에는 그렇게 표현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공을 세웠던 사람들 중에 전쟁이 끝난 후 벼슬자리에 나아가 목숨을 보존한 이가 드물었습니다. 곽재우는 벼슬이 싫어서였는지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아무튼 벼슬자리를 피해 다니다 이 곳에서 짚신을 삼아 입에 풀칠을 하다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나라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불운한 말년과 별반 다르지 않지요.

 

예나 지금이나 간신배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것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세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라의 대표가 되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치졸한 선조 임금으로 인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던 사람들의 말로가 비참했고, 엉터리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이 정권을 잡게되면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이 불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과연 좋은 세상에서 공정하게 잘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망우정에서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망우정에 가면 크다란 나무 두 그루가 그런 저런 세월을 껴안은 채 묵묵히 서 있습니다. 망우정이라는 이름이 던져주는 무게만큼 울림이 느껴집니다. 정자에 앉으면 무심히 흐르는 낙동강과 마주하게 됩니다.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을 때는 드문드문 자리잡은 모래톱 위로 새들이 날아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무덤덤한 물길만 눈에 담깁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잊고 싶은 근심이 있을테지요. 이곳에 와서 곽재우의 심란했던 삶도 한 번쯤 떠올려보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어도 좋을 곳입니다. 어쩌면 사는 게 별 거 아니라는 개똥 철학 하나쯤은 건져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곳은 만옥정입니다. 공원 이름이 만옥정인데 무슨 술집 이름같지 않나요? 창녕에는 국보가 두 개 있습니다.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돌 비석 같은 것이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사람들은 국보라 하면 대단하게 여기지만 창녕사람들이 진흥왕 순수비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좀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가야는 신라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가야 땅이었던 창녕 입장으로 보자면 자신의 나라를 망하게 한 신라가 원망스러울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나봅니다. 

 

만옥정 근처 길을 두고 진흥왕 행차길이라며 미화를 하고 있습니다. 확대해석을 하자면 이 또한 사대주의의 발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재를 두고 지역적 의미는 접어두고 오로지 가치의 개념만으로 여기다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 건 아닐까 싶습니다. 무슨 비판이 그리 심하냐구요? 역사는 있는 사실을 아는 것도 좋지만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만옥정에는 진흥왕 순수비 뿐만 아니라 다른 돌비석도 많습니다. 창녕에 부임했던 공직자들의 선정을 기리는 비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임기간이 2~3년 정도가 많습니다. 뿐만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비도 눈에 띕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창녕에 남긴 공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너도나도 경쟁처럼 세워진 비를 보면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진짜 선정을 베푼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선정비는 더욱 그런 생각을 들게 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이 난세에 창녕을 위해 어떤 선정을 베풀었는지 그 내용을 기록해두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비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용과 거북의 모습을 아주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게 아주 많은 만옥정입니다. 

 

 

창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혜림 생가입니다. 성혜림이 누구지? 이런 분들도 계시겠지요. 성혜림은 바로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 바로 그 성혜림입니다. 성헤림이 김정일과 결혼을 했을 당시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고 하지요. 예쁜 여자들이 많고 많았을텐데 결혼을 한 성혜림을 김정일이 아내를 맞은 것을 보면 무척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 눈에 안경이겠지만요.

 

성혜림은 시아버지 김일성의 반대로 끝까지 며느리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세 번째 아내를 얻으면서 러시아로 보내지게 되었고 김정은이 집권을 할 그 즈음에는 테러에 대한 공포와 외로움 등으로 신경 쇠약에 걸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국땅에서 무덤조차 변변하게 쓰지 못했다고 하니 성혜림으로서는 누린 바도 많았겠지만 한 많은 생을 산 셈이지요.

 

성혜림 생가는 여느 고택에 비해 아주 관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집 주인인 영원무역 노스페이스 사장님의 경제력 덕분이지요. 이 집은 특별히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그런 건물이라기보다는  조선후기나 근대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잘 관리된 가옥입니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문화재로 지정이 되겠지요.

 

돌아보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별장 정도는 모르지만 생활하기는 불편하겠다고 그럽니다. 집은 커서 좋은 게 아니라 편한 공간이면 족하다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겠지요. 그렇지만 연못이 있고 그 옆에 굽어진 소나무가 서 있는 정원은 아주 그럴듯합니다. 일반인들도 사전에 허락을 받으면 구경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소개하고 싶은 곳은 관룡사입니다. 관룡사는 꼭 한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절로 유명합니다. 그게 사실인지. 단지 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인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기원의 힘이라는 게 있기는 하지요. 저도 그 힘을 믿는 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모든 사람이 똑 같이 소원을 빌어도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제각각 다르다구요, 그 차이는 결국 본인에게 있답니다. 욕심많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소원이 들어올 자리가 부족하다나요. 결국 욕심을 비워내고 좋은 기운이 있어야 소원을 이루는 힘이 커진다는 뜻이겠지요. 어쨌든 관룡사에 들러 소원 하나 빌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관룡사는 좋은 기운이 흘러넘치는 곳에 지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이며 지붕이 몸체보다 더 큰 약사전도 그럴듯하게 서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용선대가 으뜸입니다. 용선대는 관룡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후덕한 부처님이 넉넉한 미소를 띄며 세상을 향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부처님 옆에 앉아 부처님이 내려다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여행은 좋은 곳을 찾아가서 그 장면을 눈에 담은 일이 아니라 찾아가는 동안 만들어내는 수많은 사연이라고들 하지요. 예사로 여겼던 창녕에도 이렇듯 곳곳에 보석같은 장소들이 있답니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한번쯤 찾아오셔도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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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그리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