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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부러진 화살, 저자 역시 사회의 약자였다

by 달그리메 2012. 2. 9.

지난 화요일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저자와 블로거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관심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블로거들과 촬영을 나온 SBS 방송 관계자들 그리고 몇몇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이 되었습니다.

물론 책을 만들어내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간담회를 통해 직접 듣고 싶었던 핵심적인 이야기는 책을 쓴 사람으로서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과 허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짚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판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기록을 바탕으로 글을 쓴 저자가 어쩌면 가장 정확한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정리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담회를 진행하는 동안 이런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 블로거는 없었습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어쩌면 질문이 필요 없었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러진 화살>을 책으로 펴내게 된 동기나 과정 그리고 사건을 취재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속에 서형 작가의 생각이나 입장이 다 드러났기 때문에 질문을 하더라도 그 선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있었던 블로거 간담회 모습 (사진 실비단안개)

서형 작가가 <부러진 화살>을 쓰게 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법부를 고발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에 기인한 것도 아니었고,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통해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 무기력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싶다는 분노도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사건을 찾아다니며 기록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고 했습니다.

저자에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속깊은 의도같은 뭔가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조금은 썰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서형 작가는 깜찍 발랄한 사람이었습니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 잘못한 부분이 인정되지만 영화적인 선정성으로 인해 지나치게 한쪽이 매도당하거나 마냥사냥식의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은 안타깝다는 양면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어느 쪽으로도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작가를 보면서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는 허구와 진실의 관계를 묻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하려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형 작가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말과 태도 속에서 나름 읽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작가 개인의 표현 방식이거나 성향이거나 일에 대처하는 능력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취재를 하고 책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약자의 처지에서 형성된 피해의식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형 작가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가장 강조한 것이 '조직 없는 사람의 비애'였습니다. 만약 서형이 기자라는 신분이었다면 혹은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정확하고 파워풀하게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직없이 일개 무명 르뽀 작가 처지로 움직이는 서형 편에서 보자면 최고의 권위와 위치에 있는 판사는 물론이고, 피고인 김명호와 변호인 박훈조차도 다 넘어야 할 벽이었습니다. 담당 법조인도 마찬가지지만 골수 엘리트주의는 명문대 교수 출신인 김명호와 박훈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서형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능히 짐작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유명한 작가였다면 영화사 측이나 본인 모두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겠냐고 질문을 했을 때 서형 작가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 흥행을 미끼로 마치 돈이나 뜯어내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을 스스로 견딜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쿨하게 포기하는 게 맞다고 했습니다.

(사진- 실비단 안개)

3차, 4차, 5차 공판 기록은 <부러진 화살>기록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대부분 3차, 4차, 5차 공판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영화사측에서는 그조차 <부러진 화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김명호와 박훈의 입을 통해 나온 말 또는 박훈이 건네준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합니다. 더 우스운 것은 저작권은 그러므로 서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김명호와 박훈에게 있다고 합니다.

서형 작가와의 간담회에서 기대했던 것 만큼 명쾌한 이야기를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의 비난도 듣고 싶어하지 않은 소심함과 돈 문제를 떠나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려는 의지가 없는 서형 작가의 태도가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서형을 두고 비판하고 싶은 생각을 거두었습니다. 조금만 들여다 보면 그 역시 이 사회 안에서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대접하는 것은 조직이고 배경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한민국은 온통 미쳐 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서형을 두고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쉽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조직과 출신과 배경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서형 작가의 무기력함을 두고 차마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부러진 화살>을 쓴 서형은 괴물같은 사회에서 주눅들고 웅크리며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우리 혹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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